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23-05-09 21:07:36
기사수정

▲ <그림 1>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 네델란드),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1665, 유화, 44.5 x 39cm, 마우리츠호이스 왕립 미술관, 헤이그.


☛ 인공지능 AI가 그림을 그린다?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생각했던 미술에 AI가 당당하게 들어왔다. 이제 AI 그림(AI가 그린 그림)은 하나도 놀랄 일이 아니다. 이미 많은 사람이 AI 그림을 선보였고, 경매장도 되었다. 이것으로 보면 AI 서예작품도 곧 나타날 것 같다. 평생 갈고 닦은 서예가의 작품이 AI 작품과 같아진다면, 더 못하다면 허망하지 않을 서예가가 있을까? 지난 3월 인공지능이 그린 〈진주 귀걸이 소녀〉가 네덜란드 미술계를 후끈거리게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 네델란드)의 〈진주 귀걸이 소녀〉를 인공지능이 오마주한 것이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한 미술관에 걸렸기 때문이다.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 소녀〉, 서양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고, 일반인도 신문이나 잡지 등 어디서인가 몇번은 보았을 유명한 그림이다. 그러나 복습을 겸해, 그리고 AI 작품과 관련하여 간단히 언급한다.  


☛ 그림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보면,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가 누구인가를 원망하는 듯, 애처롭게 이별해야 하는 심정으로 관자(觀者)를 보고 있다. 진주 귀고리를 했을 정도이면 행복한 처지일 것이나 얼굴 표정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그래서 많은 이야기가 나돈다) 소녀의 묘한 표정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만큼 아름답기도 하고 절제된 초연함, 선하고 순수함, 수수께끼 같은 불확실성 등의 신비스러운 느낌으로 ‘북유럽의 모나리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똥그란 눈, 큼직한 진주 귀고리, 곧 움직일듯한 입, 등은 보는 이마다 달리 느낄 수 있는 얼굴이다. 이 역시 모나리자 처럼 모델이 누구인지는 정설이 없고, 누구의 아내, 어느 집의 하녀 라는 등 이야기만 있다. 이 그림이 인기가 높아진 것은 〈모나리자〉처럼 호기심을 자아내는 불확실성 때문이라 한다. 그러나 다빈치와 달리 작가인 베르메르는 ‘수수께끼의 화가, 침묵의 화가’라는 말과 같이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기꼇해야 카타리나 볼너스(Catharina Bolnes)와 결혼해 11명의 아이를 두었다는 것, 그의 아버지는 전문 직조공이자 미술품 중개상이었다는 것 정도이다. 그림의 특징으로는 작은 작품을 주로 그렸고 어느 것이나 세밀하게 그렸다는 것, 파란색과 노란색을 좋아해서 이들 색을 자주 사용했다는 것, 주로 역사화를 그리다가 1650년 대 말 일상적인 장면을 다루는 장르화(풍속화, genre painting, 아마도 최초의 장르화가) 제작에 열중하게 되었다는 것 정도이다. 


 이렇듯 ‘그의 삶을 모르고 그의 작품만으로 알 수 있는 화가’라는 평이 있는가 하면 ‘마치 곱게 빻은 진주 가루를 물감에 섞어서 그린 것 같다.’는 평이 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서와 같이 그의 유작 37점 중 21점에 진주가 등장한다 하니 진주 그림을 많이 그린 것 같다) 사실 그는 섬세한 빛의 효과를 얻기 위해 진주색의 점을 찍는 푸앵틸레(pointilles, 점묘법) 기법을 사용하였다(이 기법은 쇠라, 고갱 등 신인상주의 화가에게 영향을 미침). 그리고 그림의 세부를 더욱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해 임파스토 기법을 사용했기에 그의 그림은 더욱 부드러워지고 미묘하게 되어 오늘날의 명성을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평생을 통해 40~50점(밝혀진 것은 37점) 그렸을 정도로 당시의 영향력은 미미했으나 19세기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귀스타브 쿠르베(1819~1877, 프랑스)를 비롯한 프랑스 사실주의 화가들이 베르메르의 그림을 열광적으로 좋아했다. 자연주의적인 방식으로 주위의 세계를 재현하고자 했던 사실주의 미술가들은 베르메르 같은 17세기 네덜란드 장르화 화가들의 작품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  


▲ <그림 2> AI로 만든 <그림 1>의 오마주 그림.


  문제는 AI가 그린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그림 2》이다. 《그림 2》는 《그림 1》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와 비슷한 구성이나 느낌이 다르다. 《그림 1》의 소녀는 무엇인가 애틋한 느낌이라면 《그림 2》의 소녀는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의 그림이다. 머리를 감싼 터번, 고개를 살짝 틀어 왼쪽으로 보는 차가운 표정, 시선을 사로잡는 큰 발광 귀걸이, 그리고 전체적인 채색까지 서로 다르다. 좋게 보면, 《그림 2》는 《그림 1》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것이라 하겠다. 사실 이 그림은 《그림 1》을 AI가 오마주한 작품이다. 


  내막은 이러했다. 최근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Mauritshais museum)이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원작의 오마주 작품을 공모했다.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대여하는 동안 관람자를 위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걸렸던 자리에 이 그림의 오마주 작품을 전시할 목적이었고, 공모작품 중에 이 작품이 포한된 것이라 한다. 당연히 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과연 AI의 작품이 미술에 속하는지, 비록 그러한 배려라 하더라도 과연 AI 작품이 미술관에 걸릴 자격이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생각이 분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림 2》를 만든 작가는 인공지능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 ‘미드저니’에 인터넷에 나도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이미지와 자신의 구상을 입력하고 포토샵도 사용하여 작품을 완성헀다 한다. 이러한 AI 작품이 미술관에 걸린 것에 대해 비판이 쏟아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행사를 주관한 미술관에서는 논란의 여기가 있는 작품이지만 "작품을 선정한 이들은 AI가 창작한 것임을 알고도 마음에 들어했고, 결국 선정하게 된 것"이라 설명했다 한다. 말하자면 창조적인 작품으로 해석한 것이다. AI가 곳곳에서 말썽이다. 인간을 돕지만 전쟁에 적용될 경우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들기도 한다. AI가 날로 발전하고 있다.


  현재에도 AI가 총체적으로 인간을 앞서고 있다. 단순 계산에서야 당연하겠지만 이제는 추리능력에서도 앞서고 있다. AI는 지금도 가히 귀신인데, 이러한 발전 속도라면 멀지 않은 장래에 무한자에 버금갈 것이다. 챗GPT(OpenAI가 개발한 대화 전문 인공지능 챗봇이다. 챗은 채팅의 줄임말이고 GPT는 ‘Generated Pre-trained Transformer’의 약자이다)는 사람과 농담도 하고, 그림도 그리며 소설도 쓰고 작곡도 한다. 미술계에도 《그림 2》와 같은 AI 작품으로 인해 미술이 무엇인지, 미술이 아닌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그러나 시간은 걸리겠지만 결국 AI 작품도 미술작품으로 인정받을 것이고, AI 작품의 작가는 AI에 창의성을 부여한 사람이 될 것이다.


☛ 이제 서예를 생각해 보자. AI 서예작품이 가능할까? 가능할 것이다. 《그림 2》를 완성할 수준의 AI 라면 서예(작품)는 ‘낫놓고 ㄱ짜 쓰기’ 정도로 쉽게 해결할 것이다. 어떤 서체, 어떤 풍의 서예작품은 물론이고, 독창적 창작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예는 알고리즘이고 변수도 그렇게 많지 않기에 충분히 가능할 것이나, 인간을 능가하는 AI 서예작품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서예의 조형미는 하나로 규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예는 조형보다 내용, 내용보다 서자(글을 쓴 사람)의 인품 여하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이 작품은 내가 썼노라!’ 하듯 큼직하게 작가의 이름을 쓰고, 더욱 두드러지게 빨강 도장을 찍는 것은 아닐까. 반면에 그림은 서예와 다르다. 작품만 좋다면 무명이건 정신 이상자이건 살인자이건 상관없다. 예를 들면, 베르메르는 전자, 빈센트는 중자(中者),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 이탈리아)는 후자의 경우라 하겠다.   


  달리 말해, 서예는 인품이 우선이다. 비록 AI가 조형이 뛰어난 서예작품을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결코 고상한 인품을 가질 수는 없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서여기인(書如其人) 사상은 장구한 서예사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고, 이 사상이 유지되는 한 AI 서예작품은 판매되지 않을 것이니 만들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이 참으로 빨리 변하고 있다. 필자의 이 말도 ‘오늘의 해가 저물기 전까지만 유효하다.’ 해야 확실할 것 같다.


海潭 吳厚圭(書畵批評家)


[덧붙이는 글]
오피니언, 기고 등 외부 필진의 글은 '뉴스부산'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0
기사수정
저작권자 ⓒ뉴스부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서화디자인
최근 1달간, 많이 본 기사더보기
尹 대통령, 한·일·중 환영 만찬 참석 제9차 한일중 3국 정상회의 공동선언 (2024-5-27) Joint Declaration of the Ninth ROK-Japan-China Trilateral Summit  매달 책1권을 읽고 만나는 '4월 독서회', 5월 정기모임 개최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