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18-01-07 16:26:01
기사수정

海潭의 書藝漫評



[들어가면서] ......................................................................................


"현대는 지나친 규격화시대이다. 모든 공산품은 규격화되어있고, 우리의 정서는 여기에 점점 메말라 간다. 서화디자인은 이러한 우리의 기계적 환경을 좀 더 인간적 환경으로 순화시킬 수 있으며 서화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다고 본다." 이는 해담(海潭) 오후규(吳厚圭) 선생이 밝힌 '대한민국서화디자인협회'의 창립 배경의 한 내용이다.


지난해 11월 28일부터 '뉴스부산(舊 수영넷)'은 그동안 기존의 서예법을 벗어나 서화의 감성 디자인을 현대 미술에 접목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대한민국서화디자인협회 회장 해담 선생의 서예만평(書藝漫評)을 소개하고, 첫 번째로 '海潭의 書藝漫評 - (1) 서예를 하면 행복할까?'를 게재했다.


오늘은 세 번째 시간으로 월간서예 2018년 1월호에 실린 '영화 “러빙 빈센트”와 서예'를 게재한다. 서예만평은 지난 2006년부터 월간서예에 '海潭의 書藝漫評'이란 코너로 1월 현재 143회가 장기 연재중이며, 선생의 서예철학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 뉴스부산(수영넷) NewsBusan.com 강경호 기자 -





▲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감자 먹는 사람들, 1885년, 캔버스 유채, 81cm x 114cm, 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 빈센트 반 고흐, '감자 먹는 사람들(The potato eaters)'

예술가, 서예가가 아니라 하더라도 “나는 내 예술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싶다.”는 말은 모든 이의 가슴에 와 닿을 것이다. 귀족이 지배했던 당시에 농촌 서민의 일상을 그린 빈센트의 그림은 별로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생전에 800백 여 점의 유화를 그렸는데 1점 팔렸다는 사실은, 너무 심하긴 했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구매력이 있는 귀족들의 눈에 감자먹는 농부 등과 같은 어둠침침한 빈센트의 작품은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고, 농부들조차도 자기들이 날마다 보는 모습이라 별로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세련되지 않은 솜씨로 물감을 덕지덕지 발라 놓은 작품을 누가 사겠는가? 팔린 1점도 아마 동생 테오, 아니면 캔버스로 재사용하기 위해 다른 화가가 구입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 海潭.




(3) 영화 “러빙 빈센트”와 서예



Ⅰ.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1853~1890), 테이프로도 몇 번 보았는데도, 최근 직장 가까이 있는 예술영화관에서 “러빙 빈센트”를 3번이나 보았던 것은 줄거리가 아니라 제작기법과 대사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영화 “러빙 빈센트”는 107명의 화가가 2년 동안 6만 2450점의 유화를 그려서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전체가 빈센트의 그림 이미지로 만들어져 살아 움직이는 미술품으로 느껴졌고, 화면을 빈센트의 원색과 굵은 스트로크 기법으로 처리하였기에, 장면 하나하나가 원작에서 느낄 수 있는 실감이 났다. 영화의 장면도 빈센트의 원작에서 시작하였기에 그림에 나오는 파리며 아를과 오베르 쉬르 와즈의 풍경이 100여 년이 넘는, 그 당시에 거기에 살았던 사람들과 함께 현대에서 다시 살아난 느낌을 받게 되는 것도 재미있었다. 여기에 더하여 영화 후반에서의 대사 “나는 내 예술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싶다(I want to do drawings which touch some people)”라는 말은 듣고 또 들어도 여운이 남는, 이 글을 쓰는 모티브가 되었다.


빈센트는 자신의 예술적 목표가 그렇게 불가능하게 높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루하루 고생하는 농촌의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그들의 삶을 그린 그림을 통해 자신의 진솔한 심정이 소통되기를 원했고, 그것이 사람들을 어루만질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영화 “러빙 빈센트”는 그의 사망 원인에 포커스를 두었지만 여기서는 빈센트의 예술적 영혼에 포커스를 두고, 그것이 예술로서의 서예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 돌려보고자 한다.



Ⅱ.


빈센트는 1885년 그의 대표작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감자 먹는 사람들(The potato eaters)》을 그렸다. 처음 대작으로 그린 이 그림에 대해 빈센트 자신은 큰 관심을 보이며 동반자이자 후원자였던 친동생 테오 반 고흐(Theo van Gogh, 1857~1891)에게 보냈다.⑵ 빈센트가 이 작품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졌는가 하는 것은 1885년 4월 말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내가 농민화가(painter of peasant life)라고 자처하는 이유는 그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너도 알게 되겠지만, 나는 그렇게 불리는 게 편하다. 또 내가 농민들의 집에서 난로 옆에 앉아 많은 저녁을 보내면서 농민생활을 관찰한 것은 그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빈센트는 자기 자신의 예술적 혼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가 그랬던 것과 같이 농부와 같이 살면서 농촌 사람들과 그들의 생활을 속속들이 알고자 하였고, 그것을 그림으로 나타내고자 하였다. 이런 생활을 하면서 밀레가 인간으로서 (다른)화가들에게 보여준 것과 같이 자신도 밀레처럼 생각하고 그와 같이 실천하고자 했다는 것은 테오에게 보낸 다음의 내용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아무튼, 나도 밀레처럼 생각하고 그의 말을 완전히 믿고 있다. 밀레에 대해 이처럼 길게 쓰는 이유는, 도시 화가들이 그린 농민상이 아무리 훌륭해도, 역시 파리 근교의 농민을 생각나게 할 뿐이라고 네가 지난번 편지에서 썼기 때문인데, ~이는 그 화가들이 인간적으로 농민생활에 깊이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밀레는 또 예술에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을 농민화가라고 생각했던 빈센트는 다른 편지에서도 같은 감정을 쏟아내고 있다.


"나는 계속 가난한 화가일 것이다. 나는 계속 인간이고, 자연 속에 살 것이다. ~ 나는 농민화를 상투적인 방식으로 세련되게 그리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농민화에 베이컨, 연기, 찐 감자 냄새가 난다고 해도 좋다. ~ 마구간에서 거름 냄새가 나는 게 좋은 것이다. 그게 바로 마구간이니까. 만일 밭에서 잘 익은 옥수수나 감자 냄새, 퇴비 냄새가 난다면 그게 특히 도시인에게는 건강의 요소일 것이다. 그들이 그런 그림을 접하면 무언가 얻을 게 있을 것이다.~⑶


예술과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진지하게 생각할 내용을 부여하는 그림을 그리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나로서는 나 자신을 스스로를 비난할 수밖에 없다.~, 농민을 그리려면 자신이 농부인 것처럼, 그들 자신과 같이 느끼고 생각하면서 그려야 한다. 지금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의 모습은,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그려야 한다. 나는 너무나 자주 농민은 하나의 독립된 세계이고, 수많은 관점에서 바라볼 때 그 세계는 문명화된 세계보다 더욱더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빈센트는 자신의 실천이 대중의 무관심과 경제난으로 이어지게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과 타협하며 평범하게 살기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진솔한 인간이 되는 삶을 이어가며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공감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자 하였다. 빈센트는 그의 이런 가치관과 농민화가로서의 예술관이 그대로 투영된 작품이 바로 《감자 먹는 사람들》에 잘 나타나 있다고 본다. 이 그림에서와 같이 빈센트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진실성이 느껴지는 진정한 농촌 그림'이었다. 농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그림, 가식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농촌)냄새가 표현되길 원했고, 그래서 자연에서 살아가는 농민들과 같이 느끼고 생활하면서 작품 활동을 했던 것이다.



1885년, 캔버스에 유채, 81cm x 114cm, 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빈센트는 드디어 자신이 대단한 작품을 창조했다고 생각했고, 화상으로 일하던 동생 데오에게 금색이나 황동색 벽에 걸라는 당부와 함께 흥분된 마음으로 이 그림을 보낸다. 하지만 이 그림을 본 데오는 또 하나의 탁하고 어두운 그림일 뿐이라고 생각했고, 모든 것이 매우 밝고 환한 파리에서 이 그림은 절대로 팔릴 수 없으리라고 단정했다. 그렇더라도 빈센트는 자기가 그린 그림에 만족했고 남의 비평은 별반 신경 쓰지 않았다.


It would be wrong, I think, to give a peasant picture a certain conventional smoothness. If a peasant picture smells of bacon, smoke, potato steam=all right, that’s not unhealthy: if a stable, smells of dung-all right, that belongs to a stable: if the field has the or of ripe corn or potatoes or of guano or manure-that’s healthy, especially for city people.~Such pictures may teach them something.



Ⅲ.


이상으로 영화 “러빙 빈센트”, 《감자 먹는 사람들》을 예로 하여 서예가를 포함한 예술가들이 생각하여야 할 빈센트의 예술 정신에 대해 간단히 언급해 보았다. 빈센트는 《감자 먹는 사람들》에서처럼 농민의 냄새가 풍기는 그런 그림을 그렸으며 스스로 만족했다. ‘농민화가’가 아니고는 생각할 수 없는 세심한 표현, 그림을 그리기 위해 농촌 구경을 한 (도시)화가는 도저히 그릴 수 없는 진솔한 그림을 그렸다. 《감자 먹는 사람들》은 공자가 음악에 대해 말했던, ‘마음이 담겨있는 음악’의 경지에 이른 그림이라 할 것이다. 빈센트는 그의 예술적 목표를 달성한 것이고, 그의 그림은 세대에 걸쳐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다.


여기서 서예가의 자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왕희지, 안진경, 추사 김정희의 서예가 가슴을 울리는 것은 농민화가로서의 빈센트와 마찬가지로 서예가 바로 그들의 생활이었던 것이다. 그러했던 생활과 별로 상관없이 살고 있는 오늘날의 사람이 ‘줄긋기 10년’ 한들 서예로 사람들을 어루만질 수 있을까? 빈센트가 말한 ‘도시화가’의 신세를 벗어나려면 서예의 혼을 가져야 할 것이다. 세월은 바뀌고 또 바뀌어 서예의 혼은 이미 없어졌는데 그것을 얻기 위한 체험을 어디서 어떻게 할 것인가? 서예는 양반들이 향유했던 예술임에 서당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나 여간 노력하지 않고는 빈센트가 말하는 ‘도시화가가 농부를 그리는 수준’을 벗어날 수 없으리라. 그렇다고 붓을 잡는 이상 “나는 내 예술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싶다.”를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생각할 수 있는 대안은 있다. 기준이 이미 없어졌으면 새로운 기준을 찾는 수밖에 없고, 그것은 법첩을 버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海潭 吳厚圭(書畵批評家)



▶관련 기사, 海潭의 書藝漫評
- (1) 서예를 하면 행복할까? http://www.newsbusan.com/news/view.php?idx=1208
- (2) 現代는 書藝革命의 時代이다 http://www.newsbusan.com/news/view.php?idx=1298




.


[덧붙이는 글]
부경대명예교수이자 서화비평가인 해담 선생은 1947년 경남 밀양 출생으로 한국난정필회(韓國蘭亭筆會) 고문, (사)부산미협학술평론분과회장, 부산박물관회 회장으로 있다. 지난 2010년 50명으로 출발한 대한민국서화디자인협회는 2012년 첫 전시회 이후 매년 전시를 개최하고 있으며, 지난해 8월 29일부터 9월 3일까지 한국작가 98명 일본작가 26명이 참가한 '제6회 탈법서화전'을 부산시 초읍동 학생교육문화회관에서 개최하였다. 현재 대한민국서화디자인협회 회장으로 학술활동과 미술서예 개인전 등 작품활동에 정진하고 있다. 뉴스부산 newsbusan.com 강경호 기자
0
기사수정
저작권자 ⓒ뉴스부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서화디자인
최근 1달간, 많이 본 기사더보기
올림픽대표팀, 이영준 결승골 UAE에 1-0 승...19일 2차전 중국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 시행령 개정안 의결 부산시·새출발기금, 소상공인 지원 강화 업무협약 체결 동래구 낙민동 '부산사회복지종합센터 들락날락' 18일 개소
최근 기사
  1. 1 해운대수목원 5월 장미원 "120여종 4만여 주의 장미 만발"
  2. 2 해운대구청 신청사 착공식 ... 재송동 신청사 2027년 완공
  3. 3 백자 달항아리 (白磁 壺), 대한민국의 국보 제310호
  4. 4 국보 제309호 백자 달항아리 (白磁 壺)
  5. 5 인니에 충격패 황선홍호, 10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 좌절
  6. 6 부산시, 「디자인시티 부산 국제 콘퍼런스」 개최
  7. 7 부산시, 청년내일저축계좌 신규 대상자 모집 (5.1.~5.21.)
  8. 8 부산도서관, 5월 4일 어린이 체험행사 운영
  9. 9 한국, 변준수 황재원 백상훈 엄지성 강성진...인도네시아전 선발
  10. 10 부산시특사경, 5월 가정의 달 맞아 '먹거리 안전 특별단속' 실시
  11. 11 김해공항 국제선 확장터미널 4월 26일 개장
  12. 12 이태석 3경기 연속 도움 ... 한국선수 올림픽 예선 최초
  13. 13 국제서화디자인2024전, 6월 3일 개막 ... 4개국 183명 작가
  14. 14 국토부, ‘K-패스’ 내달 도입…“대중교통비 20~53% 할인”
  15. 15 속초 앞바다서 길이 3m 청상아리 혼획 ... 7만원에 위판
  16. 16 부산시 소통캠페인 홍보대사에 '미스트롯3' 가수 정서주 씨 위촉
  17. 17 인사혁신처, "민간경력자 채용시험... 면접 합격자만 서류 제출"
  18. 18 경찰청, 국민에게 감동 준 선행·모범 경찰관 오찬 격려
  19. 19 신임 대통령비서실장 정진석, 신임 정무수석비서관 홍철호
  20. 20 윤석열 대통령, 2024년 과학기술·정보통신의 날 기념식 참석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
google-site-verification: googleedc899da2de9315d.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