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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2-05 16:5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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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潭의 書藝漫評



[들어가면서] ......................................................................................


"현대는 지나친 규격화시대이다. 모든 공산품은 규격화되어있고, 우리의 정서는 여기에 점점 메말라 간다. 서화디자인은 이러한 우리의 기계적 환경을 좀 더 인간적 환경으로 순화시킬 수 있으며 서화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다고 본다." 이는 해담(海潭) 오후규(吳厚圭) 선생이 밝힌 '대한민국서화디자인협회'의 창립 배경의 한 내용이다.


지난해 11월 28일부터 '뉴스부산(舊 수영넷)'은 그동안 기존의 서예법을 벗어나 서화의 감성 디자인을 현대 미술에 접목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대한민국서화디자인협회 회장 해담 선생의 서예만평(書藝漫評)을 소개하고, 첫 번째로 '海潭의 書藝漫評 - (1) 서예를 하면 행복할까?'를 게재했다.


오늘은 네 번째 시간으로 월간서예 2018년 2월호에 실린 '기준을 달리하면 행복한 서예'를 게재한다. 서예만평은 지난 2006년부터 월간서예에 '海潭의 書藝漫評'이란 코너로 2월 현재 144회가 장기 연재중이며, 선생의 서예철학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 뉴스부산(수영넷) NewsBusan.com 강경호 기자 -




▲ 모네, `인상(해돋이)`, 1873년, 캔버스에 유채, 48×63cm, 프랑스 파리 마르몽탕 미술관.




모네, '인상(해돋이)'

얼핏 보면 루이 르루아의 혹평에 공감이 간다. 그러나 모네는 끈기 있게 자신의 화풍을 고집하여 빛에 대한 독자적 해석과 작업 방식을 개발했다. 이 그림은 이른 아침 안개 속에 떠오르는 태양이 바다를 물들이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마치 짧은 순간에 펼쳐지는 빛의 유희를 보는 것 같다. 이러한 순간적 그림을 그리기 위해 모네는 거칠고 짧은 붓질을 구사했는데, 이 기법은 인상주의의 전형적 기법이 되었다. - 海潭.




(4) 기준을 달리하면 행복한 서예



Ⅰ.


최근 서예전의 작품을 보면 점차 수준 높은 작품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유명 서예가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물론, 붓 잡는 이 누구나 유명 작가가 되기를 원할 것이나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오직 열심히 쓰고, 보고, 생각하는 우직한 방법이 최선이고, 이 중에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수준 높은 창작은 어렵게 된다. 피카소가 미술에 대해 답하기를 (열심히) ‘그리는 것이다.’라 말한 것은 정곡을 찌른 말이다. 그러나 맹목적 열정이나 노력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오직, 창작의 정신으로 정진하는 것이 왕도라면 왕도라 하겠다.


어떤 이는 서예가의 작업은 모두 창작이라 말하기도 한다.(1)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창작은 남과 다른 본질적 창작이라야 하며, 사실 동서양 고금을 통해 '유명 작가(획을 그은 작가)'는 모두 이러한 창작품을 생산한 작가들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작가들의 특징을 알아보는 것은 바로 유명 작가로의 길을 알아보는 것이라 하겠다.



(1) 플로티노스(Plotinus, 204~270)철학, 중세미술 사상으로 보면 창작일 수도 있다. 즉, 플로티노스에 따른다면 미술은 자연의 미메시스(모방)가 아니다. 미술가의 영혼은 정신세계 속의 원형을 보고 창작한다. 이때 작품미의 근원은 가시적 세계(자연)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작가의 내면 정신세계에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미술가는 물질적 자연 세계를 모방하는 자가 아니라 미를 창조하는 것으로 본다.





Ⅱ.


동양의 유명 서화가 몇 명과 인상파 이후의 서양 화가 몇 명을 대상으로 하면,
① 왕희지(中國東晉人, 王羲之, 307~365) : 명문 권력가로 사회적 지위가 높았다. 그의 글씨는(좀 더 전문적인 단어로 필체는?) 현재 존재하지 않고, 임모, 탑모본 뿐이나 (보는 이 마다)서성(書聖)이라며 존경한다. 누구나 그의 서예를 말할 때 원본도 아니고, 임모작인지조차 의심스러운 〈난정서(蘭亭序)〉와 함께 왕희지를 “왕 우군”이라며 고관 귀족임을 먼저 말한다.


② 안진경(中國唐人, 顔眞卿, ~781) : 안진경의 서예는 유일하게 왕희지에 필적할 서예가로 높이 평한다. 당 현종(玄宗) 시기 안녹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평원 태수(平原太守)였던 그가 스스로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웠으며, 그 후 이희열(李希烈)의 난을 진압하다 순직하였다. 지극히 강직하고 정의감이 강한 인물로 《쟁좌위고(爭座位稿)》나 ‘천하제일 행서’라 하는《제질문고(祭姪文稿)》는 그의 성품이 드러나 있는 명필이라 한다. 사람들은 그의 성품으로 그의 서예를 말하면서 귀족적인 왕희지의 서예와 달리 자기의 정감을 필체로 나타낸 것으로 높이 평한다.


③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 : 누구나 알고 있는 추사의 서체를 여기서 굳이 논하지는 않겠다. 단지 그가 유명하게 된 이유가 <세한도>와 제주도 유배 생활 때문임을 말하고자 한다. 국보 제180호인 <세한도(歲寒圖)>는 북경에서 귀한 책을 구해 보내준 제자 이상적(李尙迪)에게 답례로 그려준 그림이다. 그림 끝에 작가 자신의 심정을 담은 발문(跋文)이 있고, 그 뒤를 이어 장악진(章岳鎭), 조진조(趙振祚) 등 북경의 명사 16명의 찬시들이 곁들여 있다. 그런데, 그림만으로 보면 평범한 하나의 ‘세한도’에 지나지 않으나 발문과 찬문, 그리고 세한도 자체의 기구한 행적(한국→중국→일본→한국)이 더해지면서 가장 대표적인 문인화, 추사의 대표 작품이 되었다.


④ 제백석(中國人, 齊白石, 1863~1957) : 중국이 키운 중국의 국민작가이다. 법고창신으로 시(詩), 화(畵), 각(刻), 서(書)를 관통하였다는 찬사를 받는다. 추사의 <세한도>나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같은 대표작이 없으면서도 세계 10대 거장에 속하는 중국 최고의 작가가 되었다. 94세를 일기로 타계하기까지 일만 점에 수천 점을 더하는 기록적 서화작품을 남겼다. 대부분 농촌생활에서의 체험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으로 중국 민중의 심중을 울렸다는 평을 받는다.


⑤ 이중섭(1916~1956) : 중국에 제백석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국민작가 이중섭이 있다. 그는 소, 닭과 새, 게와 물고기, 천진난만한 아이 등 서민의 일상생활에서 만나게 되는 소재를 택했다. 은박지를 사용한 것도 가난이 원인이겠지만 ‘생활 속의 소재’라는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이것만으로 그가 가장 유명한 한국적인 작가로 평가받게 된 것은 아닐 것이다. 빈센트와 같이 그의 천재성, 평탄하지 못했던 결혼생활, 비극적 삶과 외로운 죽음 등 작품 이외의 것이 더해진 것이라 본다.


⑥ 모네(프랑스, Claude Monet, 1840~1926) : 인상파의 창시자로 빛은 곧 색이라는 인상파 원칙을 고집스럽게 지켰다. 1874년 파리에서 르누아르, 드가, 피사로 등 살롱 전시회에서 거절당한 동료 인상파 화가들과 함께 독립 전시회를 열었다. 그러나 기존의 풍경화와는 다른 개성이 강한 그의 작품에 대한 평은 최악이었다. 비평가 루이 르루아(Louis Leroy)는 모네의 작품 <인상(해돋이)>에 대해 “참으로 인상적이다. 벽지 장식이 이 그림보다 완성도가 높다니···”라고 혹평했다.


그러나 그는 끈기 있게 자신의 화풍을 고집하였고, 결국 빛과 색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 특유의 작업 방식 등은 후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물체가 지닌 고유한 색은 없다. 색은 빛에 따라서 변화할 뿐이다”라며 같은 주제를 시간과 날을 달리하여 반복해서 그림으로써 빛과 색의 변화를 철저히 탐구했다.


말년에는 백내장으로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시력을 잃어갔지만,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죽는 날까지 시시각각 달라지는 연못과 연꽃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사후에 그의 작품이 로스코, 폴락 등 유명 후배들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재평가되었고, 세계 순회 회고전이 펼쳐지면서 오늘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⑦ 피카소(스페인, Pablo Ruiz Picasso, 1881~1973) : 정치가이며 미술가였던 피카소를 천재라 함은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실기 필름을 보면 아무리 천재라지만 어떻게 순간순간으로 그림을 저렇게 만들어 나갈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풍으로^^)그의 대표작 <게르니카>는 정복자의 힘, 정치적 힘도 억누를 수 없었던 예술의 힘을 보여주었으며, 92세까지 장수하며 5만여 점의 작품을 남긴 전무후무한 정력가였다(열정적인 화가였다).


⑧ 에두아르 마네(프랑스, Édouard Manet, 1832~1883) : 부유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난 마네는 사실주의 화풍에서 인상파로 전환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그의 초기작인 <풀밭 위의 점심 식사>와 <올랭피아>는 엄청난 비난을 불러일으켰으나 반면에 수많은 젊은 화가들에게 감명을 주었고, 후에 인상주의를 주도하였다.


⑨ 빈센트 반 고흐(네델란드, Vincent van Gogh, 1853~1890) : 빈센트는 정신병원에도 입원했고, 스스로 자신의 귀를 자르고 자살까지 한 것은 분명히 정신 이상이며, 이러한 비정상적 정신 상태에서 그린 그림이 오늘날 최고의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더구나 작품 활동은 10년도 하지 못했고 37세에 비극적 삶을 스스로 마감했다.


누구나 그의 그림을 평할 때는 이러한 그의 파란만장했던 인생을 언급한다. 빈센트가 유명하게 된 또 하나의 동기는 비평가의 평이다. 1890년 1월 미술 비평가이자 시인인 알베르 오리에(Albert Aurier, 1865-1892)는 《메르퀴르 드 프랑스》라는 잡지 제1호에〈소외된 사람들, 빈센트 반 고흐〉라는 글을 게재하면서 빈센트 반 고흐를 천재라 평하였다.


당시 비평가들이 낯설다는 이유로 평하기를 주저했으나 그는 오히려 그러한 부분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즉, 빈센트의 작품에 대해 ‘그는 때로는 사파이어처럼 눈부시다. 타오르는 불꽃같은 분위기, 변화무상한 자연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분출하고자 하는 자신의 열광적인 의지를 노래’하고자 한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주제의 특징에 관한 깊은 연구, 남성적인 과격함이 있으면서도 섬세한 표현 등이 보통의 그림과 너무 다르게 표현했던 것이 어느 누구도 추구하지 않았던 독창성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Ⅲ.


이상에서와 같이 불후의 세계적 명가라 할 작가와 작품들의 특징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유명 작가가(자신만의 창작세계를 지닌 작가라는 뜻으로) 될 수 있는 요건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가난에 허덕이며 살다가 젊은 나이에 애석한 죽음을 맞이하는 작가라야 한다. 즉 삶의 고난이 예술혼으로 승화된 빈센트, 이중섭의 경우이다.


둘째, 90이 넘도록 장수하면서 죽을 때까지 작품 활동을 하여 많은 작품을 생산해야 한다. 피카소, 제백석, 마네 등의 경우이다.


셋째, 천재성과 더불어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인품이 특출하게 높아야 한다. 황희지, 안진경, 추사 등의 경우이다(그러한 특징이 있으나 그럼에도 더 중요한 것은 '신분이나 타고난 재능보다 창작에 대한 진정성과 열의'라는 뜻으로).


넷째, 심각한 인생 역경을 가진 작가로서 작품 자체의 이력이 있는 대표작이 있어야 한다. 추사의 <세한도>, 피카소의 <게르니카> 등의 경우이다.


다섯째, 기존 작품과는 다른 풍의 작품을 생산하고, 그것이 새로운 류파(流派)를 형성해야 한다. 마네, 모네, 피카소, 안진경, 추사, 빈센트 등의 경우이다.


생뚱맞은 전개이지만, 만약 ‘유명 작가’로의 길이 위와 같다면 오늘의 우리가 역사에 길이 남을 유명 작가로 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오늘날은 과거와 달라 남이 부러워할 고관대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옛날같은 전쟁이나 굶주림이 있는 것도 아니며 인생 역경도 심하지 않은 세월이다. 그렇다고 스스로 돈을 낭비하여 굶주리고 귀나 손을 잘라봤자 주목받지 못할 것이며, 비참하게 자살까지 하더라도 별로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다. 새로운 류파를 형성하기도 어렵고 90을 넘기며 다작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세상은 변했고 가치관도 변했으니 실망할 필요는 없겠다. 기준점을 옮기면 간단히 해결될 것이다. 정답이 없는 인생에서 ‘유명 작가’라 하는 것도 듀상이 말한 ‘앞집 남자아이의 이름’이 아닐까? 대통령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 지금의 세상에서 ‘유명 작가’가 무엇인가! 오늘을 즐겁게 사는 삶, 서예를 하면서 조금씩 향상되는 자신을 발견하고 재미를 느끼는 소소한 일상이 최상의 삶이 아닐까!


경쟁도 욕심도 버리는 자족의 서예가 ‘행복한 서예’ 일 것이다.



海潭 吳厚圭(書畵批評家)



▶관련 기사, 海潭의 書藝漫評
- (1) 서예를 하면 행복할까? http://www.newsbusan.com/news/view.php?idx=1208
- (2) 現代는 書藝革命의 時代이다 http://www.newsbusan.com/news/view.php?idx=1298

- (3) 영화 “러빙 빈센트”와 서예 http://newsbusan.com/news/view.php?idx=1383




[덧붙이는 글]
부경대명예교수이자 서화비평가인 해담 선생은 1947년 경남 밀양 출생으로 한국난정필회(韓國蘭亭筆會) 고문, (사)부산미협학술평론분과회장, 부산박물관회 회장으로 있다. 지난 2010년 50명으로 출발한 대한민국서화디자인협회는 2012년 첫 전시회 이후 매년 전시를 개최하고 있으며, 지난해 8월 29일부터 9월 3일까지 한국작가 98명 일본작가 26명이 참가한 '제6회 탈법서화전'을 부산시 초읍동 학생교육문화회관에서 개최하였다. 지난해 제9회 정기총회에서 올해 전시를 `제7회 대한민국 서화디자인 기획전(국제 ‘서화만세’전)`으로 정하고, 오는 6월 11일~17일까지 시청 1,2,3 전시실 전관에서 열기로 확정했다. 현재 대한민국서화디자인협회 회장으로 학술활동과 미술서예 개인전 등 작품활동에 정진하고 있다. 뉴스부산 newsbusan.com 강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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