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19-04-19 22:23:25
기사수정





■ 배이유의 '이유 있는 소설' ... 도에는 새가 없다(4)



배이유 작가의 첫 번째 연재작 「조도에는 새가 없다」는 지난 2015년 출간한 그녀의 첫 소설집 『퍼즐 위의 새』에 실린 10편의 작품 중, 3번째 소개되는 작품이다. 총 7회분으로 매주 두 차례, 월요일과 금요일 연재한다. 오늘은 지난 15일에 이어 제4회분으로 "방안에는 푸짐한 성찬이 차려져 있었다"를 게재한다. 일자별 게재 순서는 다음과 같다. - 뉴스부산 강경호 기자 -




1회(4월 08일) 사람들 새가 되어 날아오르는 섬!

2회(4월 12일), 짐을 들고 승선하는 사람들을 따라 배에 올랐다.

3회(4월 15일), 바다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4회(4월 19일), "방안에는 푸짐한 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5회(4월 22일), 하늘에 별들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6회(4월 26일), 별채에 아직도 불이 켜져 있다.

7회(4월 29일), 맞은편에 펜션이라는 글자가 버젓이 보였다.




........................................................................................................................................


배이유 단편소설



"방안에는 푸짐한 성찬이 차려져 있었다(4)"



방안에는 푸짐한 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관절염을 앓고 있는 큰어머니가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서 정성스레 준비한 것이다. 큰어머니는 여자를 나와 특별한 사이라고 생각한 건지, 여자 앞으로 음식을 놓아 주며 많이 먹으라고 손수 챙겼다. 형은 부엌에서 직접 손질한 회 한 접시를 가득 담아 내왔다. 그리고 맥주와 소주, 잔들을 가지고 왔다. 형은 각자의 취향을 물어보고 잔에 술을 채웠다.


“자, 이래 만난 것도 참 귀한 인연인데, 내 동생을 위하여 먼저 건배하입시더.”


형은 내 잔에 자기 잔을 부딪치며 근엄을 가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영후, 니 30년만의 귀향이가? 세월 참 무심하다.”


“아이다 30년이 넘재. 야가 11살 때 떠났으니, 우짜든동 어려운 걸음 했으니 오늘 기쁜 날 아이가. 마이 묵고 기분 좋게 취하거라.” 옆에서 큰어머니가 거든다.


형은 여자에게도 회를 한 번 먹어보라고 한다. 학꽁치 회는 먹어 보기 힘들긴데. 회는 칼맛이라며 손으로 조몰락거리면 탱탱한 맛이 없다고 자신의 솜씨를 자랑했다. 비린 맛이 없으니 먹어 보라고 권한다. 여자는 조심스럽게 젓가락을 가져간다. 나도 오랜만에 먹어본다. 투명한 살이 담백하고 고소했다. 상에는 맑은 물메기탕과 쇠고기볶음, 생선을 삭힌 김치와 동치미 등 밑반찬이 가득했다. 여자도 시장했는지 맛있게 먹는다. 방은 온돌이 쩔쩔 끓어 따뜻했다. 여자는 화장실이 가까운 쪽의 별채에서 묵기로 했다. 간혹 낚시꾼들을 재우기도 한다고 했다. 큰어머니는 심야전기를 넣었으니 좀 지나면 거기도 따뜻해질 거라고 했다.


형은 여자에게 상당한 미모라고 칭찬하면서 영화배우 Y를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듣지 않느냐고 물었다. 여자는 모호한 미소를 띠고는 그런 소리 많이 듣는다고 눙을 쳤다. 나는 이 상황이 우스웠다. 정작 형은 여자의 신분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술잔이 여러 번 비어졌다. 여자는 천천히 맥주를 마셨다. 여자의 하얀 얼굴에도 분홍빛이 돌았다. 여자는 간혹 웃기도 했지만 말은 없었다. 형은 분위기가 올라 말이 많아졌다. 형은 TV 옆에 있는 컴퓨터 파일을 열어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소개했다. 주로 칠팔십 년대 기타 음악들이었다. 비틀즈의 노래와 산타나, 무디 블루스, 지미 헨드릭스의 연주들까지 주르르 꿰었다. 형은 기분이 고조될수록 볼륨을 높였다.


“여는 노래 부르고 싶으면 큰 소리로 불러도 된다.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큰어머니는 분위기를 돋우었다. 그러다 아버지를 원망하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


“느그 아부지 참 독하재. 뭍으로 나간 뒤로 즈그 엄마 제사에도 안 오고. 하기사 느그 할배 죽었을 때도 연락할 방법이 없었지만. 느그 아부지 독하데이. 우리한테 알라지도 않고, 타지에서 외롭게 죽어삐고. 니라도 우리한테 알렸어야지.”


나는 대답 없이 고개만 주억거렸다. 아버지는 원하지 않았다. 평소에도 말했었다. 내가 죽더라도 고향에는 알라지 말라고. 자기한테 고향은 없다고. 아버지는 끝내 고향 쪽으로 눈도 돌리지 않았다.


취기가 어느 정도 오르자 형은 벽에 세워놓은 베이스기타를 가져와 독학으로 배운 실력을 뽐냈다. 연주 솜씨는 시원찮았다. 내가 넌지시 학원가서 제대로 배워보는 게 어떠냐고 권했지만, 나는 자유로운 영혼, 이라며 누구 밑에서 배우는 거 갑갑해서 못한다고 형은 손을 저었다. 여자는 자주 웃고, 적당하게 맞장구도 쳤다. 큰어머니는 아가씨가 보면 볼수록 참하다며 여자의 손을 잡고서 손도 어찌 이리 곱노, 하며 감탄을 했다.


“어무이요, 세상이 넓은 거 같아도 참 좁은 기라. 영후가 내 낚시 블러그에 들어올 줄 어째 알았겠능교.”


형은 큰어머니한테 했던 얘기를 또 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큰어머니는 블로그가 뭐꼬? 그기 초꼬렛 같은 기가, 라고 대답을 해서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형은 손뼉을 쳤다. 와, 우리 어무이 개그도 할 줄 아시네. <다음 5회 → 4월 22일 월요일 계속>



▲ design=myosoo



▶ 배이유 소설가가 보내온 자기 자기소개 ...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진해에서 유년기를 보낸 뒤 줄곧 부산에서 살았다. 시골 들판과 수리조합 물가, 낮은 산, 과수원. 그리고 유년의 동네 골목길에서 또래나 덜 자란 사촌들과 열심히 몸을 움직이며 뛰어놀았다. 지금은 징그럽게만 느껴질 양서류, 파충류들과도 가깝게 지냈다. 누군가의 등에 업혀 가던 논둑길에서, 밤하늘의 무수히 많은 별들이 내 눈높이로 낮게 내려와 심장에 박히던 기억.

2학년 때 초량동 구석진 허름한 만화방에서 경이로운 문자의 세계에 눈을 떴다. 몸과 언어가 일치하던 어린 시절 책의 세계에 깊이 매혹되었다. 이런 강렬한 기억들이 모여 저절로 문학을 편애하게 되었다. 결국 소설에의 탐닉이 지금의 나로 이끌었다. 크게 변동 사항이 없는 한 송정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패배로 거듭날 글쓰기를 계속할 것이다. eyou11@naver.com





관련기사 : 배이유의 '이유 있는 소설' ... (3) 조도에는 새가 없다

- http://newsbusan.com/news/view.php?idx=3083



관련기사 : [뉴스부산초대석] 배이유 소설가, '배이유의 이유 있는 소설'

- http://newsbusan.com/news/view.php?idx=3051



0
기사수정
저작권자 ⓒ뉴스부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서화디자인
최근 1달, 많이 본 기사더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
google-site-verification: googleedc899da2de9315d.html